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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모라토리엄은 2000년 1월 1일에 발표된 OPEC의 석유 고갈 선언과 함께 그로 인해 시작되어 2035년 4월 17 공식적으로 종료 선언이 발표되기 전까지에 이르는 경제, 자원적 공황기를 일컫는다.


  1. 왜 눈치채지 못했는가?
  2. 여파
  3. 극복의 과정
  4. 이후의 결과


       1. 왜 눈치채지 못했는가?

'재앙은 소리없이 다가왔다. 인류의 문명을 파괴한 것은 핵전쟁도, 테러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한 자원 고갈의 결과였다, 인류는 대비할 시간이 있었을지도 몰랐으나, 안일함이라는 약에 취해 예정된 운명을 외면하던 인류 문명에게 새천년은 천둥과도 같은 철퇴를 내렸다.'
후기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 오이겐 문더그비터 作, <운명Schicksal> 의 서장에서 발췌.
 물론이지만. 석유의 대대적 고갈이라는 사태를 강대국들은 몰랐을 리 없으며 미국은 분명히 그 영향을 가시권에 넣고 있었다. 그렇지만 석유 모라토리엄의 여파에 인류가 휩쓸린 데는 여러 요인이 있었다. 첫째로 OPEC으로 대표되는 중동의 산유국들은 기존의 자원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싶어 했었다. 둘째로 인류는 아직 탈석유체제를 준비할 어떤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으며. 이 준비는 '정신적 준비' 도 포함했다. 셋째로 미국 GDP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정유회사의 적극적인 로비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소수는 이 모든 것을 세계에 공표할 용기가 부족했다. 요컨대 석유 모라토리엄은 인재(人災)이자 천재(天災) 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대응은 더 많은 비축유를 축적하고,  추가 유전 개발을 검토하고,  ITER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정도로 그쳤고 다른 강대국의 대응도 이보다 나은 것은 없었다. 이러한 소극적인 대응은 다가올 석유 모라토리엄의 여파를 사전에 차단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으나, 이후 사태의 여파를 수습하는 데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강대국과 그들의 친밀한 우방국이었던 몇몇 운 좋은 국가들에게만 베풀어졌던 운명의 신의 호의이며, 떠오르는 중진국들과 기아에 허덕이는 후진국들은 아무런 방파제 없이 석유 모라토리엄을 맞이해야만 했다. 


2. 여파
3. 극복의 과정
4. 이후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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